경제논평

“신촌에 사는 길함멈 할머니는 곰탕집을 한다. 한 달 기준으로 총수입이 1,000만 원이고, 총지출이 800만 원으로 장부에 잡힌다. 할머니는 이 장사를 계속하는 것이 수지타산에 맞는 걸까, 아니면 그만둬야 할까.”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나 경제학적 비용(economic cost)이라는 기초 개념을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묻는 질문이다. 물론 정답은 ‘잘 모르겠다’이다. 만일 할머니가 같은 노동시간을 투자해 가사 도우미를 해서 300만 원을 받는다면 이 사업은 그만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개인이나 가계의 기본적인 자원은 시간과 돈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자신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이다. 할머니의 곰탕 사업에는 재료나 임대료와 같은 금전적 자원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시간도 포함된다. 

그런데 일반 직장인과는 달리 할머니 같은 자영업자가 투입한 시간의 가치는 기회비용이라는 개념을 빌려 측정한다. 시간의 기회비용은 이것을 다른 차선의 용도(next best use)에 사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금전적 가치로 측정한다. 할머니의 경우 같은 시간을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얻는 소득이 곰탕 사업에 투입한 노동의 가치라 할 수 있다. 자영업자들에게 장사 잘 되느냐 물었을 때, 그저 내 인건비 빼먹는 수준이라 답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자기 노동의 대가인 것이다. 

사실 기회비용은 경제학 강의를 듣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개념이다. 사과와 배의 가격이 각각 1,000원과 2,000원이라면 배 하나의 기회비용은 사과 두 개라 말할 수 있다. 편의점 알바생이 일 대신 한 시간 놀기로 했다면 그 기회비용은 시급인 10,000원이 된다. 경제학에서 기회비용을 가르치는 것은 이런 뻔한 개념을 익히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을 분석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이로 인한 편익이 비용보다 커야 한다. 이때 비용은 눈에 보이는 회계적 비용이 아니라 어떤 사안에 동원된 모든 자원의 가치를 합한 경제학적 비용이다. 알바생이 한 시간 동안 5,000원짜리 김밥을 점심으로 먹었다면 점심 식사의 총 경제학적 비용은 명시적 비용 5,000원에 암묵적인 시간 비용 10,000원을 합친 15,000원이 된다. 또 그가 티켓 가격이 만 원인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러 가려면 영화 감상으로 얻는 만족도가 시간과 티켓의 가치를 합한 3만 원보다 높아야 할 것이다. 다시 할머니의 예로 돌아가면 곰탕 사업의 경제학적 비용은 회계적 비용 800만 원에다 할머니의 노동가치 300만 원을 합친 1,100만 원이다. 따라서 경제학적 이윤은 -100만 원이 되므로 이 사업은 지속하면 손해인 것이다. 

경제학을 처음 배울 때 쉽게 들어오지 않는 것이 한계(margin)의 개념이다. 한계효용, 한계비용, 한계수입 등 한계라는 접두사가 들어가면 추가적 한 단위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맥주는 첫 잔이 최고이고, 그 이후의 한 잔씩은 만족도가 작아진다. 정의 자체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만 ‘모든 의사결정은 한계에서(at the margin) 이루어진다’라는 대목은 조금 생소할 수 있다. 맥주 시장에서 소비자나 생산자는 나름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한다. 맥주의 시장 가격이 1,000원으로 고정된 경우, 소비자는 한 병씩의 효용이 이 가격보다 높은 한 소비를 지속할 것이다. 첫 번째 병의 효용을 1,500원 정도로 환산할 수 있다면 이는 남는 게임이다. 그러다 5병 째의 효용이 1,000원 정도라면 멈추게 된다. 비슷한 논리로 생산자도 제품을 하나씩 공급할 때 얻는 한계편익인 시장 가격이 제품을 추가로 만드는데 드는 비용, 즉 한계비용보다 높은 한 공급을 계속할 것이다.

간단한 사례를 들었지만 한계편익-한계비용 틀은 경제학적 의사결정의 핵심이다. 이때 비용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의 가치도 포함하는 경제학적 비용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경제학도들이 이 기본적인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어려운 경제 이론만 익히며 졸업을 한다. 경제학 전공의 장점은 경제 문제 자체를 익히는 것도 있지만 다양한 방법론을 경험해 본다는 데 있다. 지나치게 추상적이지 않다면 수학이나 통계 기법도 배워 놓을 가치가 크다. 하지만 현실 경제를 이해할 기본적 분석틀을 익히는 것이 모든 것에 앞선다.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대학 졸업을 앞둔 딸이 취업 대신 2년짜리 대학원 석사 과정에 진학하려 한다. 당장은 모아 둔 돈이 없어 2년간 수업료 2,000만 원은 엄마에게 빌려 달라고 했다. 물론 석사 학위로 얻을 수 있는 편익에 대한 설명도 빠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냉정한 엄마는 이 사안의 비용-편익 분석을 할 때 등록금 2,000만 원에 더해 2년이라는 시간의 기회비용을 더한 경제학적 비용을 사용할 것이다. 대졸 연봉을 3,000만 원이라 한다면 6,000만 원이 대학원 공부에 사용될 시간의 가치인 셈이다. 엄마를 설득시키려면 딸은 대학원 진학의 총 편익이 8,000만 원보다 높다는 증거를 대야 할 것이다. 

이 예에 나오는 엄마나 앞서 등장한 김할멈 할머니는 경제학 공부를 한 적이 없다. 다만 그들은 상식에 근거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뿐이다. 경제학에서 기회비용이나 경제학적 비용 같은 개념을 가르치는 것은 경제 현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경제이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씩 제대로 익히면 굳이 대학원에 가지 않아도 실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지가 크다.

또 다른 예로 수년 전 뜨거웠던 반값 등록금 논쟁이 있다. 이때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와 외국 대학의 등록금을 비교하며 적정성을 따졌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두 경우의 편익이 동일할 때나 타당한 방식이다. 예를 들어 한국 대학의 일 년 등록금이 1,000만 원이라서 하버드의 3,000만 원보다 “싸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일 하버드가 제공하는 교육은 등록금 수준의 가치가 있는데 비해, 한국 대학은 700만 원 정도의 편익만 제공한다면 어떻게 답할까. 

비슷한 예로 지휘자 정명훈이 서울 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시절 받던 연봉을 놓고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이때는 그래도 이분과 비슷한 수준의 명성을 갖춘 외국 지휘자들의 연봉을 제시하며 의견 대립이 벌어졌지만 이 역시 적절한 분석이라 보기 어렵다. 정명훈이 우리나라 클래식에 공헌한 정도와 이미 수준이 충분히 높은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다른 지휘자가 할 수 있는 공헌의 강도와 성격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물론 생활 수준이나 관행 등 연봉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획일적인 정답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분석틀 자체는 합리적으로 세울 필요가 있다.  

이 외에도 대중적인 관심의 강도에 비해 분석의 수준이 떨어지는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국회의원 정원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도 인구 대비 몇 명씩의 도식적인 국제 비교가 정답인 것처럼 내세우는 전문가가 적지 않았다. 그런 통계도 도움이 되지만 여기서 핵심 사안은 그들이 국민 세금으로 충당되는 세비만큼의 성과를 올리냐이다. 정원을 현재의 300명에서 200명으로 줄이고 절약된 예산을 나머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더 나은 국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일반 시민을 찾기 어렵지 않다. 전문가라면 기존 이론과 관행의 덫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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